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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아침은 흐렸다. 아침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아침에 못일어날까봐 잠도 못자겠다고 했던 나는 그야말로 大자로 뻗어 코까지 골면서 잤다.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흐린 하늘을 보며 걱정이 많았다. 내 인생에서 '비행기'란 고등학교 다닐 때 수학여행 가는 날 탔던 제주도행 대한항공 국내선 항공기가 전부였다. 처음 타보는 국제선, 처음타보는 저가항공인데 비까지 오다니. 설마 늦춰지는건 아니겠지? 걱정할 시간도 없이 자동차는 김해공항 국제선 입구에 도착했다. 짐을 내리고, 태워주신 여자친구 아버님께 인사드리고 짐을 들려던 찰나, 여자친구 아버님께서 손을 내미셨다. 꼭 잡고 "잘 하고와라이" 라고 해주셨다. "다녀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국제선 게이트로 들어갔다.


2016년 여름. 여자친구에게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나에게는 몇 번의 일본행이었고, 그 중에서도 후쿠오카는 부모님을 모시고 왔던 것을 포함 두 번째 여행이었다. 두 번째라 순탄한 여행을 예상했던 나는 모처럼 찾아온 폭염에 무너졌고,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던 나의 길찾기 실력 (대학 시절에 네비게이션이라 불리던 나였다)은 고작 두 번째 와보는 외국의 한 도시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런데 그 여행도 인상깊었는지 여자친구는 그 여행 직후 선언했다. "일본에 살고싶어, 일본 워홀갈거야."라고. 그렇게 선언한 여자친구의 추진력은 누구도 말릴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그 해 말에 일본 워킹홀리데이 비자 심사 4분기에 합격하고, 돈도 왕창 모으기 시작했다. 나로써는 해줄 수 있는 게 내가 합격하는 것, 그리고 돈을 모을 수 있게 생활비를 내가 마련하는 것. 이렇게 두 가지였다. 나도 다행히 2017년 1분기에 워킹홀리데이 심사에서 합격했고, 일렉트로마트에서 키덜트 판매를 하면서 아주 적은 돈이지만 생활비에 보탰다. 2017년 여름. 우리는 또 한 번의 후쿠오카행을 실시했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어느 새 폭우가 되어 내렸다. 우리가 후쿠오카에 도착한 날, 그렇게 맑았던 하늘은 이틀째 아침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쉬울 것이 없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놀고 먹기' 보다는 '일본에서 살 곳 정하기' 와 '일본을 느끼기' 였으니까. 사실 후보지는 되게 좁혀져 있었다. '오호리 공원 근처일 것.' 오호리 공원 근처 '헤이와다이 호텔 아라토'에 숙소를 잡은 우리는 호텔을 기점으로 유유자적 후쿠오카를 거닐었고, 비가 오는 날은 백화점과 마트에서 시간을 보냈으며, 비가 그치면 이 동네에는 뭐가 있는지를 찾아봤다. 돌아오는 날, 우리는 확실히 '오호리 공원 근처'를 거점으로 하자고 정했고 그로부터 몇 달을 집을 찾는 것에 매진했다. 후쿠오카 유학생, 취업비자로 들어오는 직장인, 워홀러(워킹홀리데이로 해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직접 와서 보지 않아도 집을 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아스미라이 부동산'을 통해 알아본 집들 중 가장 우리 형편에 맞으면서 가장 위치가 좋은 집을 선택했다. 집은 그야말로 '오호리 공원 근처' 였다. 그렇게 집까지 구해놓고 비행기도 예약을 했다. 그렇게 다시 2017년 10월 12일. 우리가 출국하던 그 날.

우리는 '편도' 비행기를 타고 후쿠오카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먹은 음식은 아침식사였던 '롯데리아 햄버거' 였다. 지금도 왜 그 때 한식을 안먹은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는데, 마치 군대 훈련소에 들어가서 내가 왜 그 때 그걸 남기고 왔을까 하고 후회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40분. 그 짧은 비행시간이 우리를 바다건너 섬나라로 보내줬다. 기내식도 없는 비행시간, 그렇게 짧은 시간과 그렇게 가까운 거리를 두고도 우리만의 생활을 해야 하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 우리는 '워킹 홀리데이'로 오게 되었다. 우리만의 생활, 우리만의 새 출발이 이 가까운 이웃나라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잘 할 수 있을지, 일본이 좋아질 수 있을지 너무 궁금하고 설레였으며 무서웠던 그 날. 

2017년 10월 12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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